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 (문단 편집) === 죽음의 5일 === 약 닷새간 생존자들은 바다 위를 떠 다녔는데, 식수나 의약품이 매우 부족하였다. 바다 위에서 탈진한 승조원들은 서서히 죽어가거나 환각 증세를 겪었다.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변 해역은 [[상어]]떼 출몰지인 탓에 상어들이 [[시체]]와 부상자들의 피냄새를 맡고 이들을 공격하여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.[* 상어 때문에 사망한 생존자 숫자를 두고 적게는 수십 명에서부터 많게는 150명까지 논란이 상당하다.] 당시 생존자들은 맥베이 대령이 지휘하는 그룹과 [[군의관]]이 지휘하는 그룹, 또 다른 [[장교]] 한 명이 지휘하는 그룹까지 총 세 무리로 나뉘어 표류했는데, 군의관이 지휘하는 그룹에서는 군의관이 사망하는 승조원들의 [[인식표]]를 일일이 모으다가 자기 그룹에 속한 [[군종장교|군종관]]이 사망하자 절망해 모아둔 인식표를 바다에 던져버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.[* 이 참상을 1975년 개봉한 영화 [[죠스(영화)|죠스]]에서 생존자 퀸트 선장이 이야기한다. 참으로 얄궂게도 퀸트 선장은 이후 자신이 당시 동료들이 상어에게 어떻게 죽었다고 이야기한 거의 그 내용대로 죽었다.] 또 다른 그룹에선 몇몇 승조원들이 심각한 환각 증세 때문에 서로를 죽이고 인육을 먹는 행위까지 벌어지기도 했다. 맥베이 대령은 이 순간까지도 조명탄, 거울까지 동원해 구조 신호를 계속 보내었다. 침몰 직후 보낸 구조 신호를 근처 미 해군 통신 중계소가 감지했지만 누구도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. 한 수신소는 [[당직사관]]이 [[술]]에 취해서 자느라, 다른 수신소는 당직사관이 노느라, 또 다른 수신소는 일본 해군의 계략이라고 판단해서 구조 신호를 무시했다. 후에 맥베이 대령이 구조된 후 [[해군본부]]에 바다에 떠있는 '''닷새간''' 왜 구조가 없었는지 따졌으나, 해군본부는 '''그런 구조 신호는 없었다'''고 답했다. 일본이 패전할 조짐이 짙어지는 무렵이라 그 누구도 감히 미 해군의 함선을 가라앉히리라 의심하지 않았지만, 가뭄에 콩 나듯이 피해가 발생하긴 했다. 인디애나폴리스가 침몰하기 6일 전 같은 해역에서 [[버클리급 호위구축함]] USS 언더힐함이 [[가이텐]]에 피격당하여 격침당했을 정도였으니 확실히 안심하기는 아직 일렀다. 그러나 해군본부는 함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는 중대한 실책을 저질렀거니와, 7월 31일 레이테섬에 도착해야 할 배가 행방불명이 된 상황에서도 관심 한 줌 기울이지 않았다. 이 사건의 책임은 해군본부에게도 일정부분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